기술 수준 열세 및 신소재 차별화 미흡이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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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미 FTA 재협상이 논의되는 가운데 국내 섬유산업의 FTA 관세효과가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보고서가 나와 주목을 끈다. 그 주인공은 정부 산하 공공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이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4일 ‘섬유산업의 한미FTA 5년 평가와 과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관세폐지에 따른 對미국 수출증대 효과는 FTA 발효 직후 2013년까지 나타났다가 그 이후로는 경쟁력 열세로 점차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2년 한미FTA가 발효될 때만 하더라도 섬유산업은 대미 관세율이 높아 자동차산업과 함께 대미 수출증대 효과를 가장 많이 누릴 분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관세폐지 품목의 대미 수출은 2012년과 2013년에는 각각 15.1%, 6.2% 증가했지만 2014년(-5.3%), 2015년(-0.9%), 2016년(-3.0%)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 혜택에도 불구하고 국내 섬유산업이 미국 시장 경쟁에서 크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후발개도국들은 저가의 섬유를 공급하며 맹추격해오면서 국내 섬유산업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관세폐지 품목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2011년 0.83%에서 2013년 0.97%까지 올랐지만 지난해 0.88%로 떨어졌다. 

 

이는 대만, 홍콩, 중국, 인도, 태국 등 아시아국가의 약진 속에 미국 내 섬유시장에서의 가격경쟁에 열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표적인 주력 품목인 폴리에스터 단섬유사는중국과의 경쟁제품이다. KOTRA가 뽑은 ‘한미 FTA로 날개 달 중소기업 35대 수출유망상품’이자, FTA 10대 수혜품목 중 하나다.

 

한미 FTA로 4.3%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 중·고가 제품군을 중심으로 수출확대여력이 다분해지고, 동시에 면화가격 급등 및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폴리에스테르 혼방비율이 확대되고 있어 현지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경쟁국가인 중국의 미국 내 섬유시장점유율 확대와 아시아 후발도상국의 맹추격에 가격경쟁력을 잃어나고 있는 상황.

 

한편 최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FTA의 폐지와 재협상 논의를 언급하며 “미국만이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내용”이라고 거론한 것에 대해 “한국이 대미시장을 상대로 강세를 볼 것이라 예상됐던 섬유와 자동차 모두 한미 FTA를 통한 수출 증대 효과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노희찬 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도 미국 내 시장 조기 선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노 회장은 “섬유패션산업의 지속적인 시장 확대를 위해서라도 FTA를 통한 해외 판로 확대가 최대 관건”이라면서 “특히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미국 시장 진출 확대로 국내 섬유수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FTA 조속한 발효로 경쟁국보다 시장을 조기에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기술 수준 열세와 차별화 신소재 개발 미흡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이로 인해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이 점유한 미국의 고성능·차별화 섬유시장 개척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 따라서 국내 섬유산업이 한미FTA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기술혁신을 통한 제품 차별화·고부가가치화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FTA 관세철폐 지연 시 3억5200만불 수출 손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과 미일 FTA의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 재협상 시 대미 수출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7개 품목 중 하나로 섬유를 지목했다. 보고서는 관세율 재산정(시나리오 A)과 관세철폐 지연(시나리오 B)이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토대로 섬유의 경우 관세철폐 지연에 무게를 두었다.

 

이는 한미 FTA의 관세 철폐 기간을 향후 5년간 늦추는 방향으로 재협상이 진행된다는 가정이다. 관세 철폐 이후 지난 5년간 주요 제조업의 대미 수출 관세 철폐가 급하게 이뤄졌다는 미국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섬유 품목의 관세 철폐 기간이 지연(양허 유보)될 경우 수출 손실액 규모는 3억5200만달러, 취업손실은 4186명으로 추산했다. 국내생산유발 손실액은 2021년까지 누적액 8천억원, 부가가치유발 손실액은 2200억원으로 추산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남석 전북대 교수는 “한미 FTA가 개정된다면 시나리오 A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미국 현지 투자를 확대하는 한국 다국적기업에는 미국 기업과 같은 수준의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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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對미 수출 증가, 한미FTA 효과로 단정 짓기 어려워

산업연구원은 이번 보고서에 앞서 지난 7월에도 ‘한미 FTA 제조업의 재조명’이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 체결 이후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이를 한·미 FTA 효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미 FTA와 우리나라의 對미국 수출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무역수지 악화를 근거로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무역적자 원인을 FTA 효과만으로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對미국 수출은 2009년 388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6년 716억달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수출에 영향을 주는 다른 여러 변수들이 존재해 FTA 발효 이후 무역 증가를 단순히 FTA 효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수출 품목인 자동차 산업의 경우 대미 수출은 FTA 발효 이후 92억달러 증가해 제조업 전체 증가분(179억달러)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미국의 대세계 자동차 수입도 791억달러 증가해 우리나라 업체들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5.4%에서 7.2%로 1.8%P 증가하는데 그쳤다.

 

일반기계(23억달러) 수출도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미국의 對세계 수입이 급증해 우리나라 비중은 FTA 발효 이전(3.6%)보다 0.5%P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에 따라 자동차와 일반기계는 미국 경기 회복에 따라 수요가 증가한 것이 수입 증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관세 인하와 우리나라 수출 증가 상관관계도 크지 않았다.

미국의 대한국 관세율은 2012년 FTA 발효 이후 점진적으로 하락해 2016년 제조업 평균 관세율은 0.4%를 기록했다. 미국이 FTA 특혜세율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에도, 대한국 관세율은 2016년 기준 1.7%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미 WTO를 통해 제조업 분야 관세를 상당분야 제거했기 때문이다.

 

철강과 기타 제조업은 FTA 미상정시에도 대한국 관세율은 각각 0.6%와 0.3% 수준이다. 일반기계도 관세율이 2%를 초과하지 않아 FTA 관세인하 효과가 수입 증가를 주도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자동차는 2016년에야 대부분의 관세 인하가 이뤄져 2015년까지 수출은 관세 인하 영향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산업연구원은 이번 한미 FTA 재협상 테이블에서 “FTA 발효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미국 직접투자가 큰 폭으로 증가해 한국과의 교역이 미국 내 일자리를 감소시키기보다는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통상압력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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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 무역대표부(USTR)이 지난 7월 FTA 개정 논의를 위한 회담 요구 서한에 섬유 관련한 내용이 담겨져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한에는 섬유와 의류품목의 경우 미국은 2016년 9억4천만달러 상당의 제품을 한국에서 수입했고, 이는 전년대비 3% 감소한 규모다. 2017년 5월 기준으로 미국은 8억8700만달러 상당의 섬유 및 의류를 한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미국 측의 제스처는 한국과의 FTA 재협상을 통해 무역 적자를 줄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라이시저 대표는 서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초점은 전 세계 무역상대국들과의 무역 적자 축소와 우리 정부는 한국과의 무역 불균형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20년 가까이 한국과 지속적인 적자를 겪어왔고, 한미 FTA 체결로 양 국 모두가 상당한 이익을 실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오히려 발효 후 적자는 두 배가 되었다”며 균형 잡힌 무역 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한미 FTA 재협상의 필요성을 서한을 통해 전달했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재협상은 우선 자동차산업과 농수산물에 집중된 만큼 섬유를 비롯한 여타 산업은 어떠한 방식으로 재협상이 진행되는지를 면밀하게 지켜보며 이에 대한 철저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다.[2017/10/10]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